[나우누리][버터빵] Ca'fe DeEpBLue (7202/37590)

추억의 유가촌(유머가 가득한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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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촌 레전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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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안, 나우누리... 추억의 그 시절에 대한 회상 . . . 유가촌 (유머가 가득한 마을), 푸하, 모뎀 인터넷 시절. . .

이제는 인터넷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보기 힘들어진  그 시절 세상 살던 이야기를 AV툰모아에서 들려드립니다.

 

[나우누리][버터빵] Ca'fe DeEpBLue (7202/37590)

포럼마니아 1 7,739

- 하나. Ca'fe Deepblue.


오후 세시의 까페는 참 한가합니다. 저 구석에 앉아서 뭐가 그리 좋은지 쿡쿡
웃어대는 커플 하나, 그리고 왼쪽 창가에 앉아 턱을 괴고 가만히 창을 내려다
보는 남자 하나. 전 카운터에 앉아 턱을 괴고 그 남자를 바라봅니다. 나이는
한 25살 정도 되었을까... 파란 남방에 청바지, 그리고 흙이 약간 뭍은
운동화를 신고 있어요. 그 남자 앞에 놓여 있는 커피는 아메리칸 커피. 그거
아세요? 아메리칸 커피 실은 그냥 브랜드 커피에 물 좀 더 많이 타는 거에요.
저도 친구들이랑 다른 까페 가서 마실때는 " 난 아메리칸 스타일이 좋아~ 훗..
" 하면서 마셨는데, 여기서 아르바이트 하다 보니깐 커피부터 파르페까지
만드는 법을 다 알게 되었거든요. 아메리칸 커피 마시느니 차라리 브랜드 커피
마시고 말죠. 하긴, 원래 묽게 먹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머,
얘기가 다른 곳으로 흘렀네요. 할일도 없고 심심하고 해서 전 계속 그 남자를
바라보다가, 카운터 서랍에서 종이와 펜을 꺼내들었습니다. 이게 몇번째
편지더라... 17번째던가.. 응.



안녕하세요, 아저氏?

쿡.. 아저씨가 성이 아저는 아니겠죠? 그럼 저 氏자는 쓰면 안되는건
가요? 근데 생각해보니깐 웃겨요. 김씨, 박씨, 최씨, 그리고 아저씨.
그럼 아줌마는 무슨 말 이름이 되겠네요. 야생마, 적토마, 그리고
아줌마. 풋.

이거 17번째 편지에요. 아저씨는 내가 아저씨한테 편지 쓰는거 모르죠?
맨날 우리 Ca'fe DeEpBLue와서 커피 한 잔 시켜놓고 몇시간동안 창밖만
바라보다가 가는 아저씨가 어디 내 얼굴이나 기억 하겠어요? 하긴, 나도
아저씨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잘은 몰라요. 창 밖만 바라보니까 어디
얼굴보기가 쉬워야 말이죠. 그래도 내가 쳐다보는 거 느끼면 가끔 얼굴
이라도 돌려주면 좋을텐데. 어, 근데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내가 아저씨
좋아한다거나 뭐 그런건 아니에요. 이래뵈도 그렇게 무턱대고 남자
좋아하는 아이는 아니랍니다. 21살이나 먹었으니까, 남자보는 눈도 좀
생겼다구요.

저번 편지에 제가 그렇게 썼죠? 이번 편지에서 제가 어쩌다가 여기서
일하게 되었는지 알려드리겠다구요. 뭐 별 내용은 아니에요. 그냥, 우리
엄마 친구가 이 까페를 하시는데요, 원래 아침부터 저녁때까지 계속
나오셨는데 요새 허리가 아프다고 하셔서요. 저 양재동에 있는 무슨
물리치료 하는 병원에 나가신대요. 그래서 저녁때나 되서 오실 수 있다고
하시면서 어디 쓸만한 아르바이트 생 없냐고 하시는 소리에 엄마 귀가
번쩍 뜨이신거죠. 학교 2학년까지 다니다가 뭐 좀 해볼려구 휴학하긴
했는데, 휴학할 때는 정말 시간만 있으면 할게 많을 줄 알았더니 막상
하고 보니까 정말 할 일도 없고 심심하고, 집에서는 엄마가 왕 눈치주구..
잠만 잔다구 막 뭐라구 그러구, 옆집 사는 누구 누구 비교해가면서 잔소리
하실때는 정말 우리 엄마 안같아요. 그래서 엄마가 " 너 엄마 친구 까페에
가서 아르바이트 안할래? " 할때 잔소리 조금이라도 덜 듣겠다 싶어서
바로 한다고 말해버렸구, 그 까페가 여기 DeEpBLue에요.

지금 아저씨는 뭘 보고 있을까... 창 밖으로 내가 보이는 건, 햇빛 받아서
반짝이는 한강하구, 올림픽 대교하구, 그 위를 건너가는 차하구, 저 강
너머에 서있는 아파트들하구, 방금 지나간 비행기하구..뭐 그런 것들인데.
아저씨는 저런거 보는게 재미있어요? 난 지루할 것 같은데. 근데 아저씨는
뭐하는 사람이길래 이 시간에 맨날 우리 까페 와서 창밖만 보고 있어요?
내가 아르바이트 한 게 벌써 2달이 넘었는데, 아저씨가 우리 까페 오기
시작한게 1달 정도 전이니까.. 나 벌써 아저씨 한달째 보고 있는거에요.
아저씨 심심하면 나랑 말하면서 시간 보내도 좋을텐데. 저도 오죽이나
심심하면 생판 모르는 아저씨한테 이런 편지를 쓰고 있겠어요. 하긴, 내가
이 편지 쓴다고 해도 아저씨한테 보낼 것도 아니고. 그냥 심심풀이니까,
너무 부담갖지는 마세요. 쿡쿡. 조금은 부담 가져도 좋을텐데.

어, 저기 오른쪽 구석에 앉아있던 커플 지금 일어났어요. 나갈려는 것
같은데, 도대체 커플들은 왜 그리 구석만 좋아하는지. 구석 차지하고 잘
안보이니까 쿼 키스라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멀뚱하니 앉아서 커피나
마시면서 왜 그렇게 구석만 찾는지 모르겠다니까요. 어머. 이제 오늘 편지
끝내야 되겠네요. 계산해야 되요. 그럼 아저씨 안녕~



- 두울. Ca'fe DeEpblue.


" 어머, 그래서 영신이가 좋아한다고 그랬대? "

" 몰라, 그랬나봐. 영신이 얘기는 꺼내지도 마라, 얘. 걔 요즘 얼마나
얼굴보기 힘든데. "

" 왜? 바쁘대? "

" 바쁘지, 애인 만나느라구. 도대체 애인 없는거랑 있는거랑 차이가 왜
그렇게 심한지 원. 수업 끝나면 뭐 먹으러가자구 먼저 꼬시던 애가 요새는
수업 끝나자 마자 인사할 틈도 없이 부리나케 뛰어나간다니깐. 학교에도
화장은 커녕 머리 안감아서 맨날 모자쓰고 오던 애가 요새는 화장 안하고 올
때가 없어. 그것도 입.체.화.장. "

" 쿡쿡... 그러는 너도 애인 생기면 그렇게 할 것 같은데? "

" 얘! 아냐 얘! 난 애인 생기면 친구들하고 더 잘 놀꺼다 뭐. "

" 그래 그래, 알았어. "

" 근데 너 여기서 아르바이트 하면서 혹시 괜찮은 남자 못봤니? 너한테
치근덕대는 남자는 없어? "

" ..... 너 나 걱정하는거야, 아니면 괜찮은 남자 소개시켜달라는거야? "

" 둘 다지 뭐. "

" 나 걱정하는 거면 괜찮구, 괜찮은 남자 소개시켜달라는 거면.... "

" 어! 말 꼬리를 흐리는 것 보니까....있구나? "

" 저기... 저 남자 어때? "

" 어디 어디? 어디? 저기 저 남자? "

" 아니, 그 남자 말구. 얘! 나두 눈이 있어! "

" 그럼 누구지... 저기 창가에 앉아있는 저 남자? "

" ....... 으응. "

" 흐음, 어디... 잠깐만. "

그리고 승희는 갑자기 벌떡 일어났습니다. 으악. 얘가 뭘 할려고 이러는거지.
원래 얘가 좀 한 터프 하거든요. 어. 얘 어디가는거야. 안돼, 승희야. 안돼~!!

" 쨍그랑~~~~~ "

승희가 아무래도 그 아저씨한테 가는 것 같아서 말리려구 급하게 일어서는
통에 제 앞에 놓여있던 잔이 깨져버렸어요. 어휴....... 까페 안에 있던 몇
안되는 사람들의 시선이 전부 저한테로 향해서, 저는 그만 홍.당.무. 그리고
승희는 다시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 야~!!! 너 뭐 할려는 거였어~!! 너 말리려다 이렇게 됐잖아. 난 몰라... "

" 얘도 겁먹기는... 내가 뭐 저 남자 잡아먹기라도 한다든? "

" 암튼! 그렇게 가서 뭐 어쩌려구 그랬어. "

" 그냥 가서 시간 물어보면서 얼굴이나 보려구 그랬지 머. "

" .... 누가 터프녀 아니랠까봐.. 정말... "

" 그래도 너 잔 깨뜨린 덕분에 그 남자 얼굴은 봤다. "

" ............ 어...어때? "

" 흐음... 나이는 한 스무살 초반? 중반? 뭐... 수수하니 괜찮구만. "

" 정말? "

" 너.. 표정보니까... "

" 아냐! 아냐아냐!!! 나 저 남자 좋아하는거 아냐!! "

" 얘가.. 제 발 저린가 부네? "

" 아니라니깐! "

" 그럼 내가 저 남자한테 연애 걸어도 돼? "

" 연애 걸어? 쿡.. 야. 그거 언제적 대사니? "

" 뭐 70년대 영화보니까 자주 나오던데. 암튼, 나 걸어도 돼? "

지금 제 마음속에서 뭔가 불끈 솟아 올랐는데, 이게 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저 그 아저씨 아직 좋아하는 거 아닌데. 근데 이 감정은 질투도 아니구..
뭐지?

" 안돼. "

" 왜? "

" 저 사람 어떤 사람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연애를 어떻게 거니? 혹시 알어,
무슨 범죄자일지. 너 저런 사람하고 연애 잘못하면 평생 후회한다. "

" ....... 너 나 걱정하는 거야, 아니면 너가 저 남자한테 연애걸려는거야? "

" 둘 다지 뭐. "

" 나 걱정하는 거면 괜찮구, 너가 연애 걸려는거면... "

"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무슨 내가 연애를 거니. 넘어 가자, 얘. "

" 그럼 나는 사양않고 지금이라도 당장.... "

" 얘~!! 안돼~!!! "

" 와장창~~~~~~~ "

..... 이번에는 탁자까지 엎었어요. 난 몰라.... 흑.




- 세엣. Ca'fe DeEpBlue


37번째 편지를 접으며, 팔을 뒤로 하고 기지개를 켜 봤어요. 아우, 지겨워.
지금 시간 오후 3시 17분. 지금 까페에는 저랑 그 아저씨랑 둘 밖에 없어요.
그 아저씨는 오늘도 여전히 창 밖만 보구 있구요. 정말, 너무 무심해. 내
눈에서 레이져가 나갔으면 저 아저씨 뒤통수는 벌써 대머리 됐을꺼라니까요.

그런데 어제 승희랑 한 전화 내용이 자꾸 생각났어요. 며칠 전에 우리 까페
찾아와서 저 아저씨 보구는 연애 건다구 그래서 나 당황하게 만들구, 덕분에
탁자랑 커피잔이랑 다 깨뜨려서 제 월급에서 다 메꾸게 한 것도 모자라서...
이젠 잠잠하던 마음에 돌까지 던져버렸답니다. 무슨 내용이냐구요?

" 그러니까, 넌 그 아저씨가 나 좋아해서 맨날 오는거다 이거니? "

" 그래, 그럼 왜 그렇게 맨날 거기만 오겠니? "

" 글쎄. 잘은 모르겠지만.... 그냥 경치가 좋아서... "

" 아닐껄. 내 생각에는 그 아저씨 너 마음에 두고 있는게 틀림없어. 아니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정말루. "

" 손에 장을 지진다는 건 말이 안돼. 왜냐하면 그 장이 손바닥 掌이거든.
그러니까 그냥 장을 지진다구 해야지. "

" 네, 국어박사님. 받들어 모십지요. "

" 그리고 그 아저씨는.... 맨날 창 밖만 보구 난 쳐다보지도 않는걸. "

" 그게 바로 포인트야. 잘 생각해 봐. 그 창으로 보이는게 뭐가 있겠니? "

" 한강하구... 올림픽 대교하구... 차 들하구.. 강 건너 아파트하구... 뭐
그런거지. "

" 하나 더 있어. "

" 뭔데? 비행기? "

" 너. "

" 나? "

" 그래, 너. "

" 내가 왜 보여? "

" 유리창에 비친 네 모습이 보이잖아, 이 둔팅아. '

" ....... 나 둔팅이 아냐. "

" 삐졌어? "

" 아냐. 안삐졌어. "

" 삐졌구나? "

" 아니라니깐! "

" 그거 가지구 삐지기는. 아무튼, 그 아저씨 창에 비친 너 모습 볼려구 가는거
확실하다니까. "

" ..... 그럴까? "

" 그래. 그러니까 내일이라도 당장 가서 너의 마음을 전하는거야. 전 당신
없인 못살아요~ 이제 내 모습을 봐 주세요~ 창에 비친 내 모습도 이쁘지만~
이렇게 보는 내 모습은 더 이쁘답..."

" 끊는다. "

뚝.

휴........

정말로 맞을까요? 정말 저 아저씨가 맨날 창에 비친 내 모습 볼려구 오는
걸까요? 말이라두 걸어볼까요? 어떻게 할까요?

그렇게 고민 고민 하다가, 드디어 전 결심했습니다. 그래. 말 걸어보는거야
어때? 그냥 말 거는건데. 저 아저씨도 심심한 거 같으니깐, 그냥 말 걸어보자.
근데 뭐라고 걸지. 음.... 그래. 이렇게 걸자. 리필해 드릴까요? 이렇게.

전 커피를 들고, 마음을 단단히 먹은 채로 아저씨가 앉아있는 창가로
향했습니다. 아저씨는 제가 오는 것도 눈치 못챘는지, 아니면 눈치 채고도
그냥 모른체 하는 건지 계속 창 밖만 바라보고 있었어요. 창에 비친 내 모습
보는 거면 내가 다가오는 것도 알텐데. 아저씨도 부끄러움이 많아서 모른체
하는건가? 모르겠다, 아무튼~!

" 저... "

" ......네? "

" 저기... 커피 리필해 드릴까요? "

" 아.. 괜찮습니다. 고마워요. "

- 망했다.

" 저.. 그런데... 뭐 하나 여쭤봐도 되요? "

- 어머. 나 왜이래. 내 입에서 왜 이런 소리가 나오지?

" 네? "

" 저 이 까페 아르바이트 생인데요.. 여쭤봐도 될지 모르겠지만.. 이 시간에
이 까페에 매일 오시는 이유가 궁금해서요. 아, 불편하시면 얘기 안해주셔도
되구요. "

- 하긴. 나 앞에 놓고 나 보러 온다는 소리는 하기 힘들겠지.

" 그게.... 글쎄..... "

" 힘드시면 됐구요. "

" 아뇨. 말씀 드릴께요. 앞에 앉으시죠, 일단. "

" 네. "

- 콩닥 콩닥 콩닥 콩닥

" 그러고보니 많이 궁금하셨겠네요. 이 시간에 까페에 혼자 오는 남자도 흔치
않을테니까. "

" ...... "

" 제가 매일 이 자리에 오는 이유는, 여기가 제일 잘 보이는 곳이거든요. "

" 뭐가요? "

하마터면 제 얼굴이요? 라고 물어볼 뻔 했어요....

" 그녀가 보는 것이 제일 잘 보여요, 여기서. "

- 승희 너 이 년... 장 지지고 말꺼야.

" 그녀가 보는 것이 뭔데요? "

" 지금 제가 보는 것들이요. 햇빛, 한강, 다리, 차, 그런 것들... 아마 지금도
그녀는 계속 보고 있을 거에요. 이제 밖에 나가서 다른 것 보기도
힘들테니까... 실은 그녀랑 저랑은 여기 이 까페에 단골손님이었어요. 3개월
전까지만 해도 거의 매일 이 까페에 왔었죠. 그녀 집이 저기 보이는 저
아파트였거든요. 그냥 집이랑 가깝기도 하고, 그녀가 워낙 이 경치를
좋아해서. 집에서도 매일 보면서 그렇게 좋으냐구 물어봐도 그냥 웃기만
했어요, 그녀는. 결혼까지 약속 했었는데.... "

" 그런데요? "

" ..... 사고가 났어요. 교통사고. 제가 그날 일이 늦게 끝나서 바래다 주질
못했는데.. 하필 그날... 젠장. "

그 아저씨는 탁자를 쾅! 하고 내리쳤어요. 그렇게까지 안해도.. 슬픈거 아는데...

" 그 사고 때문에 척추에 이상이 생겨서.. 지금은 걷지를 못합니다. 반신
불수에요. 휠체어를 타는 것도 싫어해서, 집 밖으로 나오지도 않고... 제가
볼려고 찾아가도 만나주지도 않고... 그리고 저도... 저도 자신이 없어서..
다리를 못쓰는 그녀와 결혼할 자신이 없어서..... 하지만.... 정말 사랑하긴
하지만.... "

" ........... "

" 그냥 그녀와 같은 곳을 보고 싶어서 여기 오는 겁니다. 전에 자주 오기도
했던 곳이기도 하지만.... 그저.. 그녀와 같은 곳을 보고 싶어서... 아마
그녀가 아파트 9층에 사니까, 이 곳이랑 높이도 비슷할 거에요. 그래서 오는
겁니다. 여기에. 저 정말 나쁜 놈이죠? 사랑한다고 해 놓고 다리 못쓰게
되니까 결혼 하는게 겁나서... 그래요, 저 몹쓸 놈입니다. "

" 그런데.. 정말로 사랑하세요? "

" .... 이젠... 그것도 모르겠습니다... "

" 지금 보는게 아저씨... 아차. 아저씨라고 불러도 돼요? "

" 마음대로 하세요.. "

" 아저씨, 지금 아저씨가 보는 건 그녀와 같은 것이 아니잖아요. "

" 네? "

" 그녀의 반대편에서.....그녀가 보는 걸 반대로 보고 있는거 아니에요? "

" 아..... "

" 저 아직 나이도 얼마 안먹었구요, 사랑이 뭔지도 잘 모르지만요... 아저씨.
아저씨가 정말로 사랑한다면... 그리고 정말로 그녀와 같은 곳을 보고
싶다면... 그녀 옆에서 보세요. 아저씨가 사랑하는 사람 옆에서. "

" .............. "

아저씨는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 말이 없었어요. 제가 너무 주제넘은 말을
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너무 답답했어요. 그렇게 사랑한다면, 다리
못쓰는 것 정도는 사랑으로 이겨낼... 어휴.... 그런데 막상 제가 이런 일이
닥친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쉽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네요.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아저씨 앞에서 조용히 일어나 다시 제 자리인 카운터로 오면서...
아저씨가 보고 있던 게 제 얼굴이 아니라는게 좀 아쉬웠어요. 누가 절 저렇게
사랑해준다면... 그냥 몰라요~ 하고 넘어갈텐데.

그리고 그 날 이후,

아저씨는 까페에 오지 않았답니다.



- 네엣. Ca'fe DeEpBLue

오후 세시의 까페는 참 한가합니다. 저 구석에 앉아서 뭐가 그리 좋은지 쿡쿡
웃어대는 커플 하나, 그리고 왼쪽 창가에 앉아 턱을 괴고 가만히 창을 내려다
보는 남자 하나....가 아니구요. 이젠 그 아저씨는 안와요. 벌써 2주일이
넘었는 걸요.

제가 너무 주제 넘은 말을 한 건 아닐까 생각두 나구... 그냥 매일 보던 사람
안보니까 좀 그립기두 하구... 차라리 말을 걸지 말껄 그랬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렇지 않아도 가슴 아팠을 텐데, 제가 더 아프게 한건 아닐까 생각도
들구요.

전 카운터에서 일어나 예전에 아저씨가 매일 앉아있던 그 자리로 갔습니다.
이젠 이게 제 일과가 되어 버렸어요. 꼭 아저씨를 대신 하는 듯이. 이 시간에
이 자리에 앉아서... 햇빛이 내려쬐는 한강과, 멋지게 서 있는 올림픽 대교와,
수 많은 차들을 지켜보고.. 그리고 저 건너에서 제가 보는 것과 반대로 보고
있을 아저씨의 그녀를 생각해 본답니다. 그녀는 어떻게 생겼을까요. 이쁘겠죠?
나랑은 비교도 안되게 이쁘겠죠? 그리고 저도 이제 이해가 간답니다. 그녀가
이 경치를 그렇게 좋아하던 이유를. 전 종이와 펜을 꺼내 들었습니다.
오늘이... 100번째 편지네요. 이게 마지막이 될 것 같아요. 아저씨 안오고 난
다음엔 하루에 다섯 통도 쓰고, 여섯 통도 쓰고 해서.. 벌써 100통째가 되어
버린 이 편지.. 편지지를 펴 놓고 마지막으로 무슨 이야기를 써야 할 지
몰라서 계속 하얀 편지지만 바라보다가, 다시 창 밖을 바라 보는 순간,

" 드르륵. "

" 어서 오세요~ "

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의례 어서오세요~ 라고 말했어요.

" 좋죠, 그 경치? "

.... 어.. 어머. 설마...!!!!

전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어요. 제 뒤에는, 멋지게 양복을 차려입은 그
아저씨가 휠체어를 밀고 서 있었어요. 그리고 휠체어에는, 하얀 웨딩 드레스를
입은 아가씨가 앉아있었답니다.

" 어머.... 아저씨!!!! "

" 그 동안 나 안와서 섭섭했죠? 제 대신 그 자리에 앉아서 제 역할 대신해
주던 거였어요? 고마운걸.. "

괜히.. 눈 앞이 아른 거려서... 눈을 찔끔 감으니까 눈에서 뭐가
흘러나왔어요. 왜 이런때 눈물이 나오는거지. 좋은데.. 너무 좋은데....

" 이 사람이 하도 아가씨 얘기 많이 해서, 지금 결혼식 끝나고 제가 이리로
먼저 오자고 졸랐어요. 고마워요... "

눈물이 막 흘러서, 전 우는 모습 보이지 않으려고 종이랑 펜이랑 집어들고
후다닥 카운터로 뛰어갔어요. 가까스로 눈물을 멈추고 보니 아저씨는 휠체어에
탄 그녀와 함께 그 자리에서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아저씨의 왼손 넷째
손가락에 낀 반지가 반짝! 제 눈에 들어왔답니다. 그래서 눈물이 난 걸꺼에요.
그럼요. 그 반지가 너무 눈부셔서..그래서....

전 100번째 편지를 쓰기 시작했어요. 드디어 쓸 말이 생각났거든요.



아저씨. 그리고 아저씨의 그녀에게.

행복하세요. 언제까지나. 꼭. 꼭. 꼭. 꼭. 꼭.

푸훗.. 꼭 닭 울음소리 같네요. 꼭. 꼭. 꼭. 아무튼, 저 지금 너무
행복하네요. 이런 사랑도 있다는 거 제 마음속에 꼭 새겨둘께요.
그리고 두고 보세요. 저도 보란 듯이 아저씨보다 더 좋은 남자 만나서
이 까페 데리고 올꺼에요. 그리고 그 자리에 앉아서 아저씨 얘기 해
줄꺼에요. 이런 사랑도 있었다구. 우리는 더 깊은 사랑 하자구.

그리고 Ca'fe DeEpBLue에게.

사랑해요. 나의,

Ca'fe DeEpBLue...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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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AVgirl쭈리❤️ 21-10-28 22:05
그거 알아요? 뭘 살까말까 고민하고 있을때 살까말까 할땐 사지마라 라는 말을 떠올리면 돼요.. 그리고 이때 좆까 라는 생각이 들면 사면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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