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영일기-15-1] 군대 못 간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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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안, 나우누리... 추억의 그 시절에 대한 회상 . . . 유가촌 (유머가 가득한 마을), 푸하, 모뎀 인터넷 시절. . .

이제는 인터넷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보기 힘들어진  그 시절 세상 살던 이야기를 AV툰모아에서 들려드립니다.

 

[병영일기-15-1] 군대 못 간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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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영일기-15-1] 군대 못 간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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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냐세요 짜가천사 가브리앨 입니다.


지금 AFKN에서 월드씨리즈를 재방송 해주고 있다.

언제나 이렇게 팝콘과 프로야구로 얼룩(?)지는 나의 주말이 비록 원망스럽긴

하지만,    야구란 언제보아도 감칠맛나는 스포츠가 아닐수 없다.

아직도 광적인 야구팬인 나는 씨즌중 한가한 주말이면 꼭 야구장에 다녀오곤

하니까..  예전에 잠시 연애를 하던때를 제외하고는 스포츠신문을 정독하여

그날의 경기결과를 숙지(?)하는게 하루일과의 가장 큰 관심사 였으니 말이다.

내친구 녀석들도 예외는 아니여서 "메이저리그" 라는 영화에 나오는

찰리쉰의 조금은 황당스러운 3명의 열성팬을 생각한다면 야구장에간

윤지원과 그 일당들에 관한 이미지엔 큰 무리는 없을듯 하다..^^

내가 국민학생이었을땐 몸이 무척 약골이었나보다.

맨날 얻어터지고 병든 병아리처럼 골골~ 거리는데다 잔병치레도 많이하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 귀하게 키워놨더니 맨날 바깥에서 동네북처럼 이리저리

채이는걸 보시고는 무척이나 가슴아퍼하시던 우리 부모님이 태권도장에도

보내보고 어린이회관에서 하던 검도교실에도 보내보고 그러셨었는데

내가 한 일주일쯤 나가면 항상 재미없고 하기싫다고 짜증을 부려 매번

부모님의 기대를 무위로 돌렸던 기억이 나곤 한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넌 도대체 뭘하고 싶니?"하고 물어보시면 난 서슴없이

"야구요!" 하고 대답했었단다..   사실 나도 그때 내가 왜 그런 대답을

하게되었지는 기억이 잘 나질 않으며 그당시 출범했던 프로야구열풍에

그라운드를 뛰어 다니는 멋진 유니폼의 남자들이 막연히 멋있어 보이지

않았을까? 하는 조심스런 추측밖에는...

그래서 유머틱 하게도 나는 4학년 2학기때부터 야구부가 되어버린거다.

처음에는 누구나 다 공찾으러 다니는 볼보이에 물주전자 당번!..

그래도 난 항상 재미있어 했었던걸로 기억하고 있다.

월,수,금요일날은 오전 수업이 끝나고 연습을 하고는 했엇는데 난 뭐가 제일

좋았냐하면 알루미늄 베트에 공이 맞을때 나는 "까앙~" 하는 소리였다.

그 소리를 들으면 그시절 어린마음에도 가슴이 확! 뚫리는거 같은 그런 기분..^^

프리배팅때도 난 공이 얼마나 멀리나가냐 그것보다도 얼마나 예쁘고 깔끔한

"깡~" 소리가 나는지 그게 제일 관심사였을 정도니 말이다.

그렇게 2년이 지나고 내가 6학년이 되었을쯤 나는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제법 실력있는 어린이로 감독님눈에 들어 주전으로 공식시합에

얼굴을 내밀게 되었다.

그때 같이 야구하던 친구들은 지금 유명해진 친구들이 꽤 많다.

LG트윈즈의 유지현은 내 2년 후배였으며 올해 스카우트 대어로 떠오른

국가대표 출신인 곽현희란 녀석은 몸집이 쪼끔한데도(아직도 나보다 작다^^)

어찌나 공을 맵고 빨리 던지던지.. 난 손도 못대던 기억이나곤 한다.

그녀석 말고도 고규남(투수) 제준석(포수)등등 지금 프로야구단에서 "X억!"

줄테니 오라고 하는 일찌감치 재벌이 되버린 친구들을 보며 연봉

천오백만원짜리 수학선생에 만족하고 있는 날 보면 왠지 한숨이 나는건..

내가 돈맛을 이미 알아버린 탓인지도..^^

아참 다시 내얘기로 돌아가서 난 6번 때로는 5번타자 였고 포지션은

외야의 좌익수였다.   비록 리틀야구 였지만 원바운드로 홈까지 빨랫줄같은

송구를 하는 나를 여러 중학교 감독들이 탐(?)내었다는 확인되지않은 후문이

있다. ^^;

난 어땠엇냐구..? 글쎄? 한국야구를 이끌어갈 어린 야구천재! 소리는 비록

못들었지만 가끔 우리팀이 우승이라도 할땐 [소년동아일보]에 대문짝만하게 난

사진의 그 구석탱이 어디쯤엔 내얼굴이 항상 끼여있었던걸로 기억된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난 평소엔 그저그런 평범한 선수였었는데 꼭

내앞에 주자가 나가서 스코어링 포지션이되면 팔자에도 없는 안타를 펑펑~

날리곤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감독님이 "지원인 왜 그렇게 챤스때만 안타를 치니?" 하고 물어보면

난 눈을 똥그랗게 뜨고 " 앞에 암도 없음 김빠지잖아요~" 하고 대답하곤

해서 딴사람들을 한참 어안이 벙벙하게 했던 기억이 아직도 가끔 떠올라

미소짓고는 한다.

그렇게 점점 야구에 재미를 느껴가며 스타(?)가 되어가던 어느 10월의

서울시장기 대회였걸로 기억된다.  내가 다니던 성동국민학교는 그당시에는

무적이었던 충암국교(박찬호 모교인 공주국민학교와 충암은 그때 리틀야구계의

괴물같은 존재였다)를 맞아 지금 동국대옆 장충동의 리틀야구 전용구장에서

4강전을 펼치고 있었는데 6-4로 뒤지는 4회말에 내가 역전 2루타를 터뜨렸고..

난 아직도 그때의 손맛-공이 배트에 맞을때 느껴지는 찌르르~ 하는 느낌과

내생에 최고로 예쁘게 "깡!"소리를 만들어냈던 기억을 아직도 선명히

회상할수 있다.

멋지게 2루에 슬라이딩 세잎~ 을 하고 헬멧을 벗어 흔들며 본부석의 엄마에게

의기양양해 하던 그기분..^^

"오늘 이기면 교감선생님이 또 불고기 파티 열어 주시겠구나" 하던 생각..

응원나와있던 (4강전에 올라오면 5,6학년과 밴드부는 오후수업 빼고

스쿨버스타고 응원을 온다) 친구들이 내이름을 외치며 환호하던 순간 난 그

이후로 10여년을 살아오면서 내가 그토록 영웅이 되었던 순간을 기억하지

못한다..     어린 야구천재였던 그 순간을 말이다.


...우습죠?

그때의 기억들이 오늘 오래된 흑백영화처럼 천천히 기억속에 다시 흘러가는건

지금 TV에 나오는 저 야구장면 때문일까?

그땐 6회초였던거 같다.

"깡~" 소리가 나면서 내앞으로 굴러오던 평범한 땅볼이 있었다.

빠르지도 않고 그저 평범한, 노크할때 아주 많이 잡아봤던 그런 볼이었다..

거의 잡으려는 찰라~ 불규칙 바운드로 공이 팍~ 하고 튀어 오르고 왼쪽눈

언저리가 화끈 했었고.. 잠시 주춤거린 나는 다시 공을 재빨리 집어 3루수에게

던져주고는 습관처럼 공맞은 자리를 글러브로 쓰윽~ 딱았을때 뭔가 끈적하고

빨간게 묻어나고 있더군.. 그때 까지만 해도 난 뭔지 잘 몰랐다..

연습(노크볼) 할때도 공 맞는건 다반사였지만 다친적은 한번도 없었거든...

눈이 잘 안보였었던것 같고.. 입안으로 비릿한 액체가 흘러들어왔을때쯤

감독님이 뛰어오셨고.. 그뒤로는 엄마랑 누나들이 막 울던 생각밖엔 나지않는다

다친건 무서웠지만 아프지는 않았던걸로 기억이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정신은 멀쩡했었구.. 장충정형외과인가?에 갔다가 다시

이대부속병원으로 가서 뭔지 모르지만 수술을 받았구 덕분에 난 열흘쯤 푸욱~

쉬었고 그때 누나들과 부모님이 많이 슬퍼하셨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병원에 있을때 친구들이 많이 문병을 왔었고 학교도 안가고 내가

좋아하던 만화책이랑 과자,초콜렛 같은걸 아버지가 매일매일 배터질 많큼

사다주셔서 정말 좋았던 기억빼고는..

눈에 안대를 풀던날 난 내얼굴이 혹시나 영화에서 보던 헐크처럼 형편없이

찌그러져 있지나 않을까..? 하고 걱정했었는데 눈밑에 바늘자국이 난거

빼고는 예전처럼 이쁘(?)더라구..

그래서 난 걱정 없었는데 엄마가 택시안에서 우시는걸 보고..

' 내가 뭔가 심각한 잘못을 했구나.'는걸 어린마음에도 조금은 짐작할수 있지..

그뒤로는 내 글러브도 베트도 모두 아버지께서 내다 버리셨고..

그리고 난 다신 운동장에 서보지 못했으며 뺑뺑이 추첨을 받아 원래

스카웃되기로 했던 배재중학대신 광진중학교에 들어가고..

그래서 정신없이 살아 문득 뒤를 돌아보니 바로 여기까지 흘러와 있었던 거다.

왼쪽눈이 잘 안보이긴 하지만 난 별로 불편을 느끼진 않는다.

가끔 술이 한잔 들어가면 거리를 잘 못맞춰(한쪽눈으로만 보면 원근감각이

없다^^) 남의 잔 대신 엉뚱한 곳(?)에 술을 따르는일 빼곤 ..

이렇게 나는 '수정체중벽결손증' 이라는 무시무시한 질병으로 군 면제판정을

받고 스믈넷이란 나이에 민방위 훈련을 가야하는 처량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하긴 눈이 하나쯤 안보이는건 큰 흠이 아닌듯 싶다..

요즘 세상엔 두눈 시퍼렇게 뜨고도 사람구실 못하는 사람이 신문을 펴도

TV를 켜도 너무나 쉽게 눈에 띄는 시절이니까..

왼손으로는 화장실 뒷처리(?)를 비롯한 더러운것만 만지고 신성한 오른손으론

깨끗하고 성스러운 일만하는 인도사람들처럼 어쩌면 신께서 내게 세상의

나쁜 것, 악한것을 보고 배울수 있는 한쪽눈을 회수하는 축복(?)을 내리신거라

생각하면 그야말로 흐뭇한일이 아닐수 없다.

그러나 언제나 놓쳐버린 기차가 더 아름다워 보이는 법처럼..

아직도 못이룬 유년의 꿈에 더 미련을 가질 나이는 지났건만 가끔씩 가슴

한구석이 아련해 오는건 아직 내가 어른이 덜된 탓인거 같다..

혹시 이글을 읽게되는 사람은 몇년쯤 후에 스포츠신문을 부지런히 사보기

바란다.

만화에 나오는 외팔이 야구선수쯤은 못되더라도 어쩌면 외눈박이 야구선수의

인간승리에 관한 기사가 실리게 될지도 ...^^


                                            나우누리...... 밝게큰나(윤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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